사랑이라는 용기(S.E.S),

Sweetest Love(써클)

'마지막 출근'에 관한 글을 쓴 지 8개월이 흘렀다.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하기보다 내가 진짜 해보고 싶었던 분야에 도전한 시간이었다.

5년 전부터 듣고 싶었던 숲해설가 교육과정을 마침내 수료했고, 새를 관찰하는 탐조에 푹 빠져 평일 낮이면 공원으로 쏘다녔다. 자연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확인하기에 너무 좋은 시간이었지만, 백수로 남아 계속해서 신선 놀이를 즐길 순 없었다. 실업급여가 나오지 않는 달이 다가오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재취업의 과정은 어려웠으나 한 회사에 최종 합격해 한 달째 다니고 있다.

4주간의 출근길을 돌아보면 직전 회사에 다닐 때와 마음이 달랐던 것 같다. ‘좀 더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 ‘빠르게 성과를 내고 싶다’는 조바심을 장착하고 집을 나섰다. 지난 회사에서 하지 못한 경험을 이번 회사에서만큼은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결의도 섞였달까. ‘내가 못 따라가면 안 된다’는 불안 때문에 일부러 1시간 일찍 출근하는 날도 많아졌다. 일과는 온통 일 중심으로 재배열되었고 나만의 시간이 망가져 버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좋아하는 시간을 아예 뺏겨버렸다는 무력감도 들었다. 동시에 나를 위한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해야겠다는 마음도 함께 자라났다. 

어떡하지. 수습 기간인 3개월 동안 별도의 시간을 따로 내기엔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그 시간은 출근길에 확보되었고 단 5초면 충분했다. 쉬는 동안 내가 푹 빠져서 좋아했던 게 있다면 자연물을 보고 관찰하고, 이름이 뭔지 맞춰보는 일이었다. 매일 다니는 출퇴근길은 어차피 똑같으니, 그 길에 만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잠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걸 놓치지 않는 방법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수국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유치원 화단에는 수국이 심겨 있다. 아직 꽃을 피우기 전 상태니 피울 때까지 계속 사진을 찍어보면 재밌겠다 싶었다. 날을 거듭할수록 꽃잎이 점점 커지더니 물들기 시작했다. "이거 매일 관찰한 사람 있어? 나와보라 해!" 하고 속으로 꽤 뿌듯했다. 반복되는 일상과 고단한 시간 사이에 내가 진하게 좋아하는 장치를 걸어 놓으면 그날 하루가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는 걸 알았다.

시간이 없다고 말하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단 5초만 끼워 넣어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는구나.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어떠한 부담감이나 불안 없이 순수한 나로서 존재할 수 있구나. 한 발짝 물러나서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쪽으로 스위치를 잠깐이라도 켜는 게 꼭 필요하다고. 그게 ‘일하는 나’로서 지속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방법이라는 것도. 

writer. 온(IT기업에서 일과 직장생활을 소재로 콘텐츠를 쓴다.)

'소네'의 덧붙인 말. 

누군가의 여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여정을 제3자의 기록으로 쌓아갈 때 역사가 되는 거 같아요. 역사책에 그려질 '우리의 출근길'. 동시대의 인물 이야기를 인터뷰로 담고 싶다는 10년 전의 제 소망이 뉴스레터를 통해 이어질 수 있어 감사합니다. 온님의 입사를 축하해요.                                                                                                                                     

• 2020년, 매일 아침 ‘출근전읽기쓰기’ 리추얼로 시작된 이 실험은 브런치북 발행과 2021년 뉴스레터로 이어졌고, 구독자 애칭 ‘워크아미(workami, 일벗)’와 함께 확장되어 왔습니다. ‘워크(work, 일)’와 ‘아미(ami, 친구)’를 합친, ‘일하는 친구’라는 뜻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2022년부터는 읽기 모임 ‘북클럽’과 쓰기 모임 ‘펜클럽’을, 2023년부터는 필사를 중심으로 16기 이상의 유료 워크숍을 운영했습니다. 70회 이상 모임이 이어졌고, 여러 출판사와의 협업도 계속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저자들과 온·오프라인 북토크를 기획했습니다. 특히 20~40대 직장인 참여자가 많았고, 3명 이상이 카카오 브런치 작가로 데뷔하는 좋은 결실도 있었습니다.

• 이제 서울을 떠나 세종에서 살아온 지난 10년을 바탕으로, 로컬 북토크 <워크아미>를 엽니다. <워크아미> 북토크는 책을 사랑하는 세종 로컬 대표님들과 함께, 책이 어울리는 공간에서 열리는 북토크를 기획합니다. 작가를 만나는 자리를 넘어 다양한 로컬 공간에서 책이 만나는 ‘장면’을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저자에겐 세종을 처음 경험하는 기회를, 참여자에겐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낯선 감각을 마주하는 경험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워크아미> 북토크는 지역 기반 시민 콘텐츠 기획이자, 소상공인 공간 활성화를 위한 협업 실험이기도 합니다.이 여정을 함께할 ‘워크아미'를 기다립니다. (워크아미 첫 번째 북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