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출근백에 담겨 있는 물품들을 살펴보면, 유니폼, 앞치마, 열쇠, 카드지갑과 작은 수첩, 선글라스, 선크림과 립밤이 담긴 주머니인데요. 위생에 신경쓰는 직업이라 매일 세탁해서 가방에 탁탁 접어 넣는 일이 하루 일과의 마무리예요. 그 시간이면 저도 침대로 쏘옥 들어가지요. 도라에몽의 주머니처럼 재밌는 물건들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제 주머니에 있는 생활용품은 평범 그 자체이네요.

먼저 열쇠! 애석하게도 옛것을 사랑하는 프랑스인들에게 번호 키는 익숙하지 않아요. 그들은 여전히 열쇠를 너무나도 사랑하죠. 대문, 현관문, 우체통.. 등등 주렁주렁 열쇠가 달려있지만 짤랑이는 소리가 없으면 허전할 거 같아요. 열쇠고리(키링)에  르꼬르동블루 파리 굿즈숍에서 데려온 거품기였어요. 또 다른 키링은 리츠 파리의 셰프복을 입은 귀여운 곰돌이인데요. 파리의 기념품으로 사기 좋은 인형이에요. 

음.. 수첩!! 요즘은 핸드폰 메모장을 많이 사용하지만, 레시피나 업무 지시사항 등 잊지 말아야 할 메모들은 수첩에 꼭 적는 편이에요. 수첩은 갈리마르 출판사(Editions Gallimard)의 책 표지 모형인데요. '나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나요(보이시나요?) 선물하기도 좋고, 그날의 파리를 기억하는 아이템으로 안성맞춤이에요. 마지막 소품은 선크림인데요. 일하는 도중 땀 범벅으로 얼굴에 지워졌을 선크림을 한 번 더 덧바르고 난 뒤, 얼른 선글라스(사진의 검은색 가죽파우치)를 쓰고 퇴근길에 오릅니다. 아!! 가방에 빵 한덩이를 넣고, 오늘 점심 메뉴랍니다. 

아침 6시에 출근하면 보통 13시에 업무가 마치는데요. 매일이 반차처럼 느껴지지만, 만약 한국에 있다면 이른 퇴근 시간에 찜질방으로 달려가고 싶어요. 삶은 달걀과 식혜, 미역국까지. 군침이 흐르네요. 휴가를 낸다면, 당장 '비쉬(Vichy)'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온천을 즐기러요. 공기와 빛이 선회하는 수르스 홀(Halle des Sources)에서 온천수를 맛보면, 마음 앞에서 앞 뒤로 튀어 오르는 물방울이 마찰을 일으키며 매력적인 진동을 일으키겠지요. 환상으로 가득 찬 공간이자 흐릿하고 뿌옇게 보일 공간, 그 속에서 느리게 느리게 숨 쉬고 싶어요.  

서울에선 성북구 정릉동 명원박물관에서 전시회를 둘러보고 (박물관 내 차담 by 갤러리 더 스퀘어) 차담카페로 찬찬히 걸어가고 싶어요. 전통미가 물씬 느껴지는 정원과 연못, 정자, 살랑이는 바람까지. 파리로 담아갈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공간으로 꼽아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