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뜻하는 말로 짧은 패스를 빠르게 주고 받는 축구 경기 전술을 말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사람들 사이에 잘 맞아 빠르게 주고 받는 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2021년 신조어인 '티키타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의 목소리톤은 차분한 편인데요.(^^) 정말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 '티키타카'할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더 흥이 나는 사람이었어요. 그 흥을 타인을 통해 느끼고 재미를 가진 사람인 거죠. 그러다 보니 혼자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는 등 혼자만의 사색을 즐겼어요.
이달 만해도, 아니 이번 주만 해도 매일 집으로 오는 책 1권은 꼭 있었고(구독하고 있는 책 서비스나 독자 이벤트에 당첨되어 수령된 책 등), 혹은 서점에 자주 들러 구입하거나 도서관에 매일 상주하고 있으니 빌려보는 책들이 늘어난 거죠. 정확히 세어보지 않았지만, 하루에 2-3권은 소화하고 있으니 이번 주만 해도 10권 이상 책들을 훑어보고 있는 거네요. 책 속의 '티키타카'의 문구들을 찾아내는 게 재밌어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필사하고 그 느낀 점을 다이어리나 SNS 채널에 꾸준히 써왔던 거 같습니다.
그러던 중 요즘 눈에 들어오는 드라마 한 편이 있었어요.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극본을 지은 박해영 작가의 신작 <나의 해방일지>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재밌게 봤던 장면은 이민기 배우 역의 염창희가 누나 염기정(이엘 배우)과 나누는 대화 씬입니다. 둘은 의좋은 오누이기 보단, 말대답하며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힐난하는 관계입니다.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마냥 '티키타카' 대화 씬이 많아요. 이리도 호흡이 잘 맞는가 싶을 정도로. 그와 반대로 담담히 내뱉는 막내 동생 염미정(김지원 배우)의 대사도 마음에 콕 와닿습니다.
"날 추앙해요."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추앙은 어떻게 하는 건데?/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거.”
이 대사를 보면서, 가슴에 찡한 단어들도 있었어요. '추앙'이라는 단어가 이리도 깊은 의미가 있을 줄이야. 이 씬이 방영되고 난 뒤, 인터넷 포털에서 '추앙'이란 단어의 검색량이 많아지기도 했었죠. '높이 받들어 우러러봄'을 뜻하는 추앙은 드라마에서 또 다른 의미로 쓰입니다.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또 다른 단어이죠.
여러분의 '추앙'의 대상은 누구인가요. 그냥 마음이 다 가는 대로 추앙하고 싶은 존재가 있나요.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혹은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의심 없이 모두 응원하고 싶은 마음. 지난주 인터뷰했던 글을 오늘 다시 살펴보면서 인터뷰이가 한 말을 되새겨봅니다.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 1부터 10까지 모든 제작과 포장까지 직접 손으로 결과의 매듭을 집는 그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타인을 속이지 말고 '나를 속이지 말아야'하는 작업임을 알게 됩니다. 추앙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속이지 않고 신뢰를 기하는 작업을 보여줄 때 응원을 받을 수 있는 거겠죠.
오늘 그런 공간을 다녀왔습니다. 입장료 5만 원에 교통이 불편한 대구 근처의 경북 군위에 위치한 사유원.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려운 곳인데, 부모님 댁에서 가까운 지역이라 1시간 가량 부모님의 차편을 이용해서 편하게 다녀왔지요. 우연히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보다가 가보고 싶다는 마음과, 오늘 소개한 <포포포매거진> 6호에서 '사유원'(@sayuwon)이 등장하여 마음에 혹했습니다.
"사유원의 사유는 思惟(사유)하다에서 나온말입니다. 국보 83호인 금동미륵 반가사유상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신라 또는 백제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이 보물은 부처님이 오른뺨에 오른손을 살짝 대여 마치 사유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생로병사를 고민하여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사유원은 허정(虛靜)의 공간으로 비어 있음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차있는 것을 덜어낸 것이며 고유함이란 아무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침묵해야 할 소리가 있는 곳입니다."
반가사유상이 있었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년의 시간을 일터로 몸담았기에 '사유'라는 단어의 의미를 그 공간에서 가져왔다는 것에 신뢰감을 가지게 된 거 같아요. '반드시 이 공간은 가야만 한다!'라는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져 이 공간으로 이끌게 만들었습니다. 예약제로 갈 수 있는 이 곳은 3시간가량 머물 수 있습니다. 그 시간동안 쉼없이 걸으며 여러 건축물들이 세워진 의미를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특히 제 몸과 마음에 와닿았던 곳은 아래 3-4번째 사진인 '내심낙원'이었습니다.
<내심낙원>을 번역한 김익진 선생님은 대구에 정착하여 일생을 가톨릭에 바치고 청빈한 삶을 살으셨죠. 그와 벨기에 출신 찰스 매우스 신부의 교유(交遊, 서로 사귀어 놀거나 왕래함)를 기리기 위해 번역서에 이름을 따온 추모당이었습니다. 이들의 우애가 널리 이곳에 새겨지는 공간에서 깊은 명상과 사유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공간을 나오니 세상의 빛이 달라 보이기도 했고요.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마지막 사진)가 지은 내심낙원 뿐만 아니라, 그의 소대(첫 번째 사진)와 소요헌(두 번째 사진)도 가슴 한편에 와닿았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피카소 뮤지엄으로 지을 예정이었던 소요헌의 사연도 안타까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본 승효상 건축가의 명정(일곱 번째 사진)은 삶과 죽음을 잇는 공간이었습니다. 묵상을 깊이 해야 하는 공간으로써 우리 삶에서 어떤 길이 옳은 방향인지 그 공간에 놓여진 '좋아하는 달항아리'를 보며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삶에서 가장 추앙받는 존재는이 세상에 없는 이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에 종결된 <북클럽 3기>에서 한 달간 이어령 선생님의 책들을 읽으며, 북클럽원들과 이어령 선생님의 글쓰기 삶과 그가 펴낸 책들에 대해 추앙했었거든요.
이어령 선생님의 책에 그런 내용이 나오죠. 내가 태어난 것 자체가 선물이자, 축복이며.. 삶을 이어오는 건 어찌보면 나를 만들었던 조상의 DNA덕이라는 것을요. 반년 만에 고향집에 방문하면서 할아버지 묘소에도 다녀왔습니다. 어릴 적에 의례적으로 제사를 드린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조상님의 덕으로 제가 무탈하게 살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5월에는 생물학적으로 나를 만든 이들을 추앙하며 '어버이날'에 함께 시간을 보내시길, 일의 관계에서 나를 성장시킨 스승과 선배들을 만나 '스승의 날'에 의미를 되새기시길요.